🎨감흥 없던 반스를 미술 애호가로 만든 '최고의 작품'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방문한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에서 반스는 처음으로 미술을 의식적으로 보는 경험을 하고, 그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됩니다. ‘크고, 어둡고, 인기 없는 미술관 / 음침한 분위기와 지저분한 상태’라고 표현한 걸 보면 그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요. 하지만 루브르 미술관에서도,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미술의 매력을 반스는 그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미술 애호가로서의 시작은 그렇게 의외의 장소, 예상치 못한 작품에서 찾아오게 됩니다.

그 이후로 그는 예술을 소재로 한 소설을 다수 집필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박제 앵무새를 찾는 여정이 담긴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비롯해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쇼스타코비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대의 소음』, 빨간 코트를 입은 사뮈엘 포치의 초상화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집필한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는 모두 그의 예술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담긴 소설입니다. 그렇기에 화가를 주제로 삼은 에세이를 쓰는 일도 반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요? 

👍아직 미술의 재미를 모르겠다고? 이건 재밌을걸!

최근에 심해에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를 탐험하러 타이탄호에 탑승했다가 세상을 떠난 관광객들의 뉴스를 들어보셨나요? 바다 밑으로 떠난 타이탄호가 실종되면서 많은 사람이 ‘영화 같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잠수정의 기술적인 문제나 사전 경고를 무시한 인재라는 점을 떠나서, 이미 일어난 비극 그 자체에 대해서 예술적인 면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타이탄호의 폭발뿐만이 아닙니다. 배우들은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사고를 재연하고, 텔레비전은 대통령의 암살을 연출하며, 시인들은 연쇄살인 사건을 노래합니다. 줄리언 반스는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을 보며 이와 같은 “재난의 쓸모”를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화가와 명화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해 주는 전시 해설을 들으며 관람하면 그림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요. 우리의 반스가 쓴 미술 에세이에는 이에 더해 작가의 ‘사적인’ 감상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 가장 다를 것입니다. 예술가의 생애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 그 예술가의 명화를 비평하고 있고, 상상과 추측을 가미해 독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결론으로 이끌어갑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예술가의 삶으로도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고요.

베르트 모리조는 최초의 인상파로 인정받은 여성 화가 중 한 명인데요. 그녀는 함께 미술을 공부했던 언니 에드마의 결혼 이후로 주로 ‘실내에 앉아 야외를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을 그립니다. 반스는 화가의 이런 그림이 단순히 안락하고 편안한 여성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닐 거라고, 바깥세상 또한 여전히 따분하게 느껴졌음을 표현했을 것이라고 비평하다가, 곧 “여성에 대한 속박과 여성 해방 운동의 한계를” 표현한 게 아니겠냐고 질문을 던지는 식입니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예술 감상에는 정답이 없다고, 즉각적인 감정이나 심사숙고해서 내린 감상도 모두 좋다고 적극적으로 미술을 즐길 것을 권합니다. 저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왠지 예술을 감상하는 제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1. 나의 '최고의 작품'을 찾아서

우디 앨런의 최고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서양의 예술을 동경하는 독자라면 정말 좋아할 영화인데요. 2010년대를 살고 있는 각본가 길은 어느 날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갑자기 1920년도의 파리로 시공간을 이동하게 됩니다.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등 쟁쟁한 예술가들을 만나 자신의 소설을 서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길.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예술가들과 대담을 나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의 표지를 구상할 때 영화의 분위기를 가져오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