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에디터 OH (이하 OH) 안녕하세요. 1BITE 구독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OH 『작은 땅의 야수들』 (이하 『작·땅·야』)의 김주혜 작가님이 러시아 최고 권위 문학상으로 꼽히는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이후 편집자님께도 축하 인사가 쏟아졌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OH  영미문학인 『작·땅·야』는 러시아를 포함해 14개국의 나라에 번역이 되었고, 그중 하나가 한국입니다.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생각한다는 작가님의 말씀처럼 영어로 쓰였음에도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지닌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한편으로는 이 특징이 편집자에게 숙제였을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독자들에게 “정말로 한국 사람이 쓴 것 같다”는 평이 있는 걸 보면 이 숙제를 잘 마치신 것 같은데요, 그 과정은 어땠나요?

박 한국어로 번역된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정말 신기하게도 한국 소설보다 더 한국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중에 작가님 말씀을 들어보니 한국어로 이야기를 구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이 소설이 두 번 번역되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머릿속에서 한 번, 번역가에게 와서 다시 한번. 그러니 영어로 쓰였어도 한국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김주혜 작가님은 아홉 살에 이민을 갔지만 여전히 영어와 한국어, 이중 언어 사용자입니다. 해외문학은 저자와 직접 소통할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데요. 이 책을 편집하면서 원저자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님의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 덕분이었죠. 작가님과 번역가님 사이에서 집필 의도가 번역에 잘 표현되었는지, 문장을 다듬으면서 뜻이 달라지지는 않는지, 작가님과 함께 단어 하나, 조사 하나까지 꼼꼼하게 검토했고요. 등장인물의 이름도 새로 지었습니다. 이 과정은 특히 흥미로웠어요. 작가님이 먼저 떠올린 한 글자로 된 이름들(옥이, 월이, 단이...)에 번역가님이 시대상, 직업상 어울리는 각 인물의 매력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한자를 붙여 지금의 옥희, 월향, 예단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답니다.

OH 김주혜 작가님은 “한국 문학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범위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깊고, 깊고 뜨거운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수상 소감을 전했습니다. 작가님이 말한 뜨거운 가진 영혼들이 『작·땅·야』속에서도 등장합니다. 편집하는 동안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인물 또는 구절이 있을까요?

박 작가님은 모든 등장인물, 악당에게까지 당신 영혼의 한 부분을 찢어서 주지 않은 인물이 없다고 하셨는데요. 전 어떤 인물도 미워할 수만은 없이, 연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책 속에서 정호가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라는 말을 하는데, 그래서 이 문장이 와닿았어요. 언젠가 북토크에서 독자 한 분이 작가님께 가장 닮은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어요. 저는 속으로 주인공인 ‘옥희’가 아닐까 했는데, 예상외로 ‘명보’라고 답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OH 『작·땅·야』 이전에도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와 미셸 자우너 작가의 『H마트에서 울다』가 현지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고 최근에는 노벨문학상과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까지 이어지며 한국적 서사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출판계를 비롯해 많은 독자가 이 흐름이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작가가 이 흐름을 이어 나갈지 궁금해지는데요, 편집자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나 책이 있을까요?

박 『작·땅·야』을 계기로 한국계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와 이어지는 작품 세계를 알아가면서 한국계 작가, 한국적 서사는 저의 주요 화두가 될 만큼 큰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두 나라에 속하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민자들이 겪는 감정을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국에서 살아온 저는 겪어본 적이 없지만 어쩐지 이입이 되고 공감이 가요. 요 몇 년 사이에는 새로운 한국계 작가를 찾는 데 집중했어요. 영미소설에서 한국계 작가 소설의 계보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저변과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해요. 당장 내년에 김주혜 작가님을 이을 또 한 명의 한국계 작가님이 강렬한 소설로 독자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OH  이렇게 말씀을 나누다 보니 문학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벨문학상과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린 이후 우리나라에 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데요, 문학을 다뤄온 편집자로서 지금의 분위기가 더욱 반가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작·땅·야』와 같이 좋은 문학 작품들을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박 문학을 읽는 데 이유가 필요치 않은 분위기가 이어지면 좋겠어요. 목적을 가지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왠지 끌려서 읽게 되고, 읽다 보니 빠져들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감상과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 문학 읽기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첫째는 재미고요. 두 번째 이유는 문학을 읽으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