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OH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는 응답하라 1988입니다. 저는 사실 잘 모르는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 시절의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드라마라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였어요. 왠지 모르게 날이 쌀쌀해지는 때면 꼭 다시 보게 됩니다. 이 드라마의 감성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에는 음악이 한 몫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OST 영상에는 지난날을 추억하는 댓글들이 즐비합니다. 이런 걸 보면 음악은 우리를 추억 속 시간으로 이끄는 타임머신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번 호에서는 음악과 추억에 대한 따스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의 맛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입니다.

자타공인 ‘옛날 음악 마니아’인 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산다고 하면, 턴테이블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커다란 스피커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겠죠? 하지만 옆방에서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딸내미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아버지가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듣는 음악은 레퍼토리가 늘 정해져 있거든요. 산울림 초기 음반, 80년대 대학가요제, 〈다이알 팝송〉에 실린 올드팝들, 나나 무스쿠리……. 어렸을 땐 그런 음악을 크게 듣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내 친구들은 아빠랑 같이 요즘 노래 듣는다는데 아빠는 왜 이렇게 구닥다리야?", "내일 기말고사인데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해!" 하고요(정말 불효……).

한편으로는 그런 아버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 아빠는 미래로 가지 못하고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옛날 음악만 들을까? 릴 테이프와 레코드판으로 오래된 음악을 들으며 자란 딸은 마음 구석에 그런 의문을 담고 편집자가 되어 11월에 출간될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LP로 듣는 음악이 주는 힘을 다룬 소설로,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손님들이 LP가게에서 만나 서로의 곁을 기꺼이 내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재개발 광풍이 물러가고 오가는 사람도 몇 없는 후미진 동네 ‘풍진동’. 그곳에 허름한 LP가게 하나가 문을 엽니다. 음반을 진열할 줄도 몰라서 얼기설기 상자째로 LP를 쌓아두고, 신용카드 결제조차 되지 않아 손님을 당황하게 하는 어설픈 가게인데요. 이 가게의 특별한 점은 바로 수많은 LP 한 장 한 장마다 붙어 있는 포스트잇입니다.

사실 이곳의 사장 '정원'은 부모님과 하나뿐인 동생을 모두 사고로 잃고 홀로 남은 처지입니다. 더는 살아갈 의욕이 없어 스스로 자신의 목숨마저 끊으려던 순간, 구석에 남겨진 6천여 장의 LP가 그의 눈에 들어왔는데요. 이 수많은 LP판이 지금은 모두 죽고 없는 가족과 함께했던 흔적이 새겨진 유일한 물건으로 여겨지자, 이걸 모두 처분하지 않고는 도저히 세상을 떠날 수 없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정원은 딱 두 달만 가게를 운영하고 LP를 전부 팔고는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정원은 곧 가게를 열고 들여놓은 음반마다 직접 손으로 쓴 감상평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이 음반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요. 곧 가게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방문하기 시작합니다. 부패를 일삼던 전 강력반 형사, 몰락한 아이돌 그룹 멤버, 취업난과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취업 준비생, 성적과 상관없이 미혼이기에 ‘불량’하다고 불리는 변호사, 병원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정신과 의사……. 정원은 유독 상처 입은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냅니다.

정원은 그런 손님을 어떻게 알아봤을까요? 바로 손님이 고르는 LP로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음반의 재킷 디자인, 추천을 원하는 곡의 장르만 들어도 그 사람의 영혼에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눈치챌 수 있던 것이지요. 우리는 내 마음을 대변한 듯한 노랫말에 공감하기도 하고요, 삶의 무게가 힘겨울 땐 나지막하고 포근한 노랫소리에 위로받기도 합니다. 정원은 자신의 추억이 담긴 LP로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고 또 그들의 상처를 가만히 보듬어줍니다.

손님들은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어딘가 모자라기도 하고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하나씩 안고 있었지만, 가게에 둘러앉아 같은 음악을 듣고 감정을 공유하며 서서히 마음을 치유해 갑니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는 이곳, 풍진동 LP가게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앉아 각자의 속도와 음악으로 회복하는 게 중요할 뿐입니다. 어느새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마치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사이가 됩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동생 정안은 정원에게 “추억은 힘이 될까, 짐이 될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만 해도 우울하고 냉소적이었던 정원은 이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정원의 발걸음을 돌린 건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던 추억이었고, 삶을 계속하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음악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정원을 사랑하고 아끼는 손님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정원은 이제 추억의 힘을 믿고 한 발짝 내일로 나아갈 용기를 냅니다.

이 책의 마감을 앞둔 지금, 이제는 아버지가 왜 옛날 음악을 듣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단순히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처럼 예전에 듣던 음악이 환기해 주는 감정과 추억으로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고 있던 건 아닐까요. 저녁엔 아버지와 같이 음악을 듣는 시간을 마련해야겠어요. 어쩌면 오늘 만들어질 이 추억이 미래의 저를 살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김주혜 작가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 6절에 작가님을 넣어주세요! 북스앤더시티에서 작가님 처음 만나 뵌 게 엊그제 같네요. 톨스토이 문학상 받을 걸 예상하시고 미리 준비해주신 축하파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밤새들의 도시』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구요. 미국판, 영국판 표지 둘 다 예뻐서 한국엔 어떻게 나올지 기대됩니다. 작가님 닮고 싶어서 1도 모르는 클래식 들으며 배우고 있어요. 조금 더 알면 신간이 더 재밌겠죠. 그리고 호랑이 러버가 됐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적과 한국말이 자랑스러워요. 다 작가님 덕분! 앞으로 작품 많이 많이 내주시고 드라마도 기대할게요. 호랑합니다 S2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하신 김주혜 작가님의 이야기는 다양한 인터뷰 지면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만 『작은 땅의 야수들』의 한국 출판에 힘을 보탠 편집자님의 이야기는 1BITE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잖아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번 레터에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 또한 영미 소설 속 한국계 작가들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왔는데, 편집자님께서 내년에도 김주혜 작가님의 뒤를 이을 한국계 작가님의 강렬한 소설이 독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니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 birdcheese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