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에디터 OH 안녕하세요. 에디터 OH입니다. 1BITE 구독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OH 지금까지 이런 여행 에세이가 있었나 싶습니다. 랜드마크 앞에서 찍은 인생 사진 한 장, 세계인이 인정하는 맛집 정보 하나 담겨 있지 않아요. 이 독특한 여행 에세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OH 두 작가님과는 『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 없지』에 이어 두 번째로 작업하신 책이라고요. 두 작가님은 사실 유튜브를 통해 저와 독자분들에게 더 친숙한 분들이죠. 영상을 통해 유쾌한 모습을 많이 봐왔는데, 책에서는 보다 진지한 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을 함께하며 편집자님이 느낀 두 작가님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지난 책을 만들며 느낀 점과 이번 책을 만들며 느낀 점이 달랐나요?

김 두 작가님 모두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고, 그 에너지를 부드럽게 전달하는 힘도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늘 재밌을 수만은 없는데, 작가님들과는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그걸 적용해 보고 더 좋은 방향을 찾아나가는 매 과정이 즐거웠어요. 창작자로서 아이디어도 많이 제시해 주셔서 저 역시 좋은 부담감을 느끼며 책에 더욱 애정을 쏟게 만들기도 하고요.

세계를 여행하면서 발자취를 넓혀 나갔듯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언급해 주신 것처럼, 창작에 있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야기하는데 그걸 꺼내놓을 때는 항상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어 나가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다른 책도 함께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번엔 창작자로서의 삶 밖에서 허휘수와 서솔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두 분의 글 스타일이 달라서 한 권으로 묶였을 때 시너지도 좋아요. 이번 책을 만들며 느낀 건 작가님들의 글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거였어요. 작가님들도 따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을 정도로 작가로서의 열정이 있고요. 독자로서도 작가님들의 다음 책이 기대될 정도입니다.

OH 책을 읽는 동안 '자유롭다'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어 본 여행 에세이가 가이드를 따라가는 여행이었다면, 이 책은 비행 편만 정해진 채, 그저 발길을 따라가는 자유여행 같았어요. 15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지만 각 챕터가 특정한 주제를 따르고 있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구성을 한 의도가 있을까요?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런 구성 덕분에 책의 메시지가 더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김 이 책은 흘러가듯이 읽혔으면 했어요. 처음에는 ‘그 여행이 망한 이유’를 비슷한 테마로 엮어서 구성해 보려고 했는데 다각도로 읽히는 꼭지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작가님들과 상의해서 굳이 테마별로 나누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기로 했어요. 비슷한 주제로 묶었다면 각 에피소드의 색이 덜 살았을 것 같아요. 다음 장에서 어떤 여행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예측불가능성이 이 책을 더 잘 보여줄 것 같기도 했고요. 메시지가 잘 드러났다면 다행입니다!

OH 제게도 망한 여행이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하나 있더라고요. 친구 2명과 같이한 대만 여행인데, 그때 사는 게 너무 바빠서 거의 돈만 내고 친구들을 따라다니기만 했었어요. 제대로 알아 보지도 않고 가서 따라가느라 급급했고 괜스레 눈치 보기 바빠서 주눅이 든 채 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안 갔으면 못 갔겠다 싶고 망했지만 후회 없는 여행이 되었어요. 편집자님에게도 망한 여행이 있나요?

김 친구와 갔던 경주 여행이 기억에 남아요. 별다른 계획이 없었으니까 그게 잘 안 됐을 때 실망할 일도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계획이 없으니까 친구가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없던 거예요. 가보고 싶은 명소가 있다고 해서 나가려던 참에 보니 문 닫기 오 분 전이었다든가, 사진관에 가고 싶어 했는데 예약이 줄줄이 잡혀 있어서 포기해야 했다든가…. 단단히 실망해서 말을 잃은 친구와 여름 햇볕 아래서 황리단길을 배회하며 생각했어요. 이번 여행 완전 망했다고.

그렇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친구와 제 관계는 여전했고, 경주 여행을 함께했었다는 사실만 남았어요. 친구는 이듬해 만난 남자친구와 그다음 해에 결혼했고 지금은 아이를 가졌어요. 그때가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평생 그때 같은 여행은 이제 없겠죠. 그런 걸 떠올리면 그때 사진관 문을 잡아끌어서 돈을 얼마든지 낼 테니 한 컷만이라도 찍어달라고 사정사정할 걸 그랬나 싶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OH  이별 후에 도망치듯 떠나기도, 가이드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인종 차별을 당했지만, 책의 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편집자님에게도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여행하며 떠올랐던 생각이나 여행 후에 깨달았던 것이 있을까요?

김 여행이라는 건 역설적으로 내가 떠나온 곳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하지 못했던 어떤 다른 생각을요. 사실 저는 해외여행을 나가본 적이 없거든요. 작가님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외국이라는 걸 낭만적인 무언가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럴싸한 핑계도 많았어요.

그래도 국내 여행은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발을 디디기만 해도 ‘그래,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경주마처럼 눈앞에 보이는 곳만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요. ‘망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보자’. 이 말은 여행의 경험이 다양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을 위한 말 같기도 해요. 엄두가 안 났는데, 저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여권을 만들고 기꺼이 망해보려고요.

OH 독자 리뷰 중에 "독자와 함께 여행함으로써 완전한 여행이 되었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책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저도 그 리뷰를 봤어요. 늘 책을 만들면서 책이 제 손을 떠나는 감각에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독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돼요. 『완전 (망)한 여행』은 특히나 읽는 동안 독자분들이 자기 자신만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어요. 여러 이벤트를 통해서 작가님들이 직접 독자분들의 망한 여행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혹시 누군가의 망한 여행이 완전해질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이 책을 발견해 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아직 읽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언젠가 여행을 앞두었을 때나 여행지에서, 혹은 어떤 여행에서 돌아와서 무심코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을 읽고 어두웠던 기억 속에서 한 가지의 완전한 순간을 발견하신다면 좋겠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어두운 기억을, 이토록 솔직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두 작가님을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