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지고 싶은 뷰

오늘도 레터를 열어주신 당신, 반갑습니다. 간단히 제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한국문학을 만들고 있는 편집자이자, 책 이야기를 할 생각에 설레서 신나게 노트북을 켠 문학 덕후 1인입니다.

혼불문학상은 故 최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혼불』을 기리고자 제정된 문학상입니다. 정확히는 무려 열 권이나 되는 그 대하소설에 담긴 ‘인간 불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대요. 올해로 벌써 14회를 맞이한 나름 중견의 문학상이지만, 아직 낯설 게 느끼는 독자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규모와 심사위원이 꾸려진 지는 몇 년 되지 않았거든요.

 

혼불문학상이 제정 10주년이 되었을 무렵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문학을 이끌며 대중의 사랑을 (그리고 저의 사랑을) 잔뜩 받고 계신 작가님들을 새로이 심사위원으로 모셨고,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상금을 무려 7천만 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지요. 보통의 장편소설 공모전 상금이 2천만 원 선인 것을 생각하면 7천만 원은 정말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당연하게도, 혼불문학상이 보다 시대와 함께하는 유의미한 문학상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지만,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은 우신영 작가님의 『시티 뷰』 였습니다. 특별히, 1BITE 구독자 여러분에게만 비하인드를 들려드릴게요. 수상작 『시티 뷰』의 원래 제목은 『면도날』이었습니다. 면도날. 상당히 강렬한 제목이죠.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서머싯 몸의 동명 소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 면도날은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해요. 30대의 공장 노동자인 ‘유화’는 죽고 싶은 마음에 주기적으로 면도날을 삼키고요, 40대 의사인 ‘석진’은 아픈 상처를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가 결국 면도날을 사용해 자신의 상처를 직면합니다. 이 소설을 쓴 우신영 작가님은 『시티 뷰』에 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현대인의 상처와 결핍

이 소설에서 ‘면도날’은 단순한 사물을 넘어 현대인이 품고 있는 상처와 결핍을 상징합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깊숙이 감추고 있는 강박이나 콤플렉스가 있잖아요. 겉으로는 그걸 감춘 채 매끄럽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 애쓰고요. 『시티 뷰』는 현대인의 그런 모습을 계층별로, 나이별로, 성별로 아주 적나라하게 다 풀어내어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 폭력의 기억으로 아파하는 사람, 산재로 연인을 잃고 끊임없이 자해를 하는 사람, 외모 강박으로 인해 섭식장애에 시달리는 사람…….

 

그러니까 『시티 뷰』는 결국 현대인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바로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년의 중산층부터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가는 이삼십 대 청년 노동자까지, 한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계층의 욕망과 상처를 “입체적이며 복합적인 인물을 통해 탁월하게 드러낸”다는 극찬을 받았지요. 이 소설에는 ‘유화’와 ‘석진’ 말고도 ‘수미’와 ‘주니’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저는 소설의 제목이 그 모든 인물들의 서사를 다 포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명 한 명의 서사가 너무도 생생하고 입체적이어서, 그 다양함을 드러내주는 것이 매력 포인트가 될 것 같았거든요. 마침 이 소설의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천 송도 신도시였고…… 포괄적인 제목이 무엇일까에 관해 작가님과 기나긴 논의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약 세 달 뒤, 여러분께 소설 『시티 뷰』를 건네게 되었습니다.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신 소식으로 떠들썩했던 며칠입니다. 저희 편집팀도 기쁨으로 들썩거렸어요. 한국문학을 읽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살아생전 한국 작가가 노벨상 수상하는 걸 보다니…… 모국어로 쓰인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읽는 날이 오다니…… 그런데 노벨문학상 소식 못지않게 저희 팀을 기쁘게 한 소식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시티 뷰』 출간 즉시 2쇄! 며칠 후 곧장 3쇄! 『시티 뷰』의 연이은 중쇄 소식이, 마치 “이제는 한국문학의 시대다!”라는 일종의 알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여러분, 한국 소설 참 재미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도 읽어주시고 혼불문학상 수상작도 읽어주세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리 함께해요.

『시티 뷰』를 읽는 동안 표지에 담긴 빌딩 유리창 너머의 이야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느낌이었는데요, 먼저 맛본 1BITE팀의 리뷰입니다.

지난 호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함께하는 호스피스의 이야기 『삶이 흐르는 대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1. 제대로 된 사과를 해보고 싶습니다. 살면서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흘린 것들이 많은데, 죽음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니 가장 되돌리고 가기 쉽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건 인간관계인 것 같네요. 죽기 전의 나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꼭 해보고 싶습니다. 2. 비슷한 맥락으로 용서도 해보고 싶습니다. 나의 죽음이 누군가의 짐이 되거나 죄책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트라우마에도 내 기척이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도 남겨보려고 합니다. 일단 가족들에게 가장 할 말이 많겠죠. 가장 가까이에 있어 가장 숨기고 싶은 게 많았던, 가장 참고 살았던 게 많았던 가족들에게 내 진심을 전부 이야기하고 가족이기에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진심 어린 격려와 마음을 받고 싶습니다. 이 세 가지만 해도 족히 한세월이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