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겨진 셔츠를 빳빳하게 다리는 마음 

에디터 OH 안녕하세요. 에디터 OH입니다. 1BITE 구독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OH 유튜브에 혜성처럼 등장한 밀라논나. 그분의 에세이가 나온다는 소식에 많은 아미치들이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중 하나였고요. 어떻게 ‘밀라논나’ 장명숙 작가님과 책을 준비하게 되었는지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OH 책을 읽으며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작가님 역시 독서를 통해 많은 것을 습득하고 실천하고 있는 독서가라는 점이었습니다.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으려 하는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책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고 적용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편집자님이 생각하시기에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책 내용에서 찾을 수 있는 점도 좋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하신 점도 좋습니다.

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것. 나를 극진히 돌보며 살아갈 것. “각자의 고유함을 인정”해줄 것. “몫을 나누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을 것.” 나이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배울 점을 배울 것. 세월에 닳고 깎일수록 뾰족해지지 않고 부드러워질 것.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갖출 것.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는 여유와 자유를 누릴 것. 자기 인생의 서사를 펼쳐나갈 것. 한마디로 압축하면 ‘건강한 주관(主觀)’입니다.

OH 책은 크게 자존, 충실, 품위, 책임이라는 4개의 챕터로 나뉩니다. ‘좋은 어른’이자 ‘롤모델’인 밀라논나를 표현하는 키워드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니 편집자님의 아이디어로 챕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편집자님이 생각하셨을 때 이 4가지 챕터 중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김 선생님께서 자주 쓰시는 언어에서 영감을 받아 네 개의 장으로 분류했습니다. “자존,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갖출 것.” “충실, 24시간을 알뜰히 살아볼 것.” “품위, 조금씩 비울수록 편안해지는 것.” “책임, 이해하고 안아주는 사람이 되어볼 것.” 네 개의 키워드는 분리될 수 없는 사람의 장기(臟器)처럼 각자의 삶과 공동체에서 모두 잘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건 꼽을 수 있어요. 자신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에 관한 ‘책임’입니다. 서로의 짐을 덜어주진 못해도 서로의 짐을 떠넘기진 않아야겠지요. 요즘 선생님과 ‘자립준비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눕니다. 아동복지시설, 그룹홈, 가정위탁시설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가 되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보호가 끝난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정책과 지도가 필요한데, 국가와 사회,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와 지원이 여전히 미흡합니다. ‘같이 잘 살기 위해 따로 또 같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저부터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OH 독자분들이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안아주는 기분이었다”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글을 많이 남겼어요. 여러 리뷰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의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다시 살게 되었다”란 목소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언젠가 사무실로 한 독자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들려온 말은 이렇습니다. “선생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알려주시기 어렵겠지요. 인생 끝내려다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살게 되었어요.” “다시 살게 되었다”란 말이 한동안 귓바퀴에 맴돌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정말 한 사람의 숨을 이어가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해보았고요. 독자분들이 회사로 보내주신 손편지들도 기억이 남네요. 한 독자분이 보내온 엽서에 적힌 문장이 떠오릅니다. “나이 먹어가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OH 장명숙 작가님과 함께한 두 번째 책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가 최근 출간되었죠.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는 밀라논나 채널을 기획하고 제작한 이경신 제작자가 함께했습니다. 세대 차이를 넘은 두 분의 진솔한 대화가 담겨 있더라고요.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에 이은 밀라논나의 이야기지만, 전작과는 다른 형식으로 택했는데요,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이유 또는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김 장명숙 선생님께서 제안을 주셨습니다. 이경신 제작자님과 함께 책을 쓰면 어떻겠냐고요. 두 분의 관계성이 흥미로웠습니다. 크리에이터와 제작자로 만났지만, 스승과 제자이기도 하고 비밀 이야기도 나누는 엄마와 딸 같은 사이거든요. 세대 갈등이 극심한 시대,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즐기는 두 분이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두 분에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책을 써주십사 제안했어요. 직장 선배이자 뜨겁게 일하는 여성으로 살고 있는 이경신 제작자님, 인생 선배이자 일하는 여성으로 살았던 장명숙 선생님, 두 분의 생각과 고민이 만나 화학 작용을 일으킬 거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OH 우연한 계기로 이해인 수녀님의 책 『소중한 보물들』도 편집하신 것으로 알게 되었어요. (단편적인 판단이지만) 최근 두 분의 작가님과 함께 독자의 삶을 응원하고 힘이 되는 책을 만드셨는데요, 앞으로도 어떤 책을 만들겠다는 목표 또는 방향성을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출간을 준비 중인 책을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김 올해 봄 여름을 뜨겁게 보냈습니다. 나태주 시인님의 『좋아하기 때문에』, 최재천 교수님의『숙론』, 이해인 수녀님의 『소중한 보물들』, 정여울 작가님의 『감수성 수업』, 김영민 교수님의 『가벼운 고백』, 장명숙 선생님·이경신 제작자님의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를 연이어 만들었습니다. 편집자로 살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만든 책과 앞으로 만들 책이 방향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책을 만들며 좋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문학, 인문, 예술, 사회, 경영 등 여러 장르를 탐구하며 지금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어떤 느낌을 주는 책을 만들지 궁리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을 변주해서 표현하면, 책을 읽고 나서 ‘인간으로 사는 게 괴롭다’라고 느낌은 주지 않고 싶습니다.

결국, 생존하는 책을 만들고 싶고요. 책의 생존은 작가의 생존이고, 작가의 생존은 출판인의 생존이고, 어떤 사유의 영속은 사회를 존속하게 하니까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선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왜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본질적 질문을 던지며 서로의 심호흡을 절단하지 않고 살피게 하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이야기하다 보니 목표가 장대해 보이네요)

편집 노트에 적어놓은 글귀를 다시 들여다봅니다.

“책이란 무엇인가. 책은 생명이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생명을 만들고 키우고 다독이고 껴안는 사람이다. 그러니 한 시절 나보다 책을 먼저 돌보게 되는 사람이다. 이 정의에서 나란 편집자의 모든 행동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하니 수술대에 선 의사처럼 신중해지고, 갓난아기를 돌보는 부모처럼 뜬눈이고, 기도하는 수도자처럼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내 꼴은 엉망이어도 서점에 놓이는 그 책은 예쁨받길 바라는 마음이다. 과장도 미화도 아닌 사실이 그러하다.”

현세에 만들고 싶은 책을 다 만들지 못하고 죽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번 자문합니다. 나는 왜 그 작가와 일하고 싶은가. 정말 그 책을 만들고 싶은가. 좋아하는가.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