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찌그러진 일상에 던지는 위로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방송국에 도착해 라디오 부스 앞에서 스스로 오프닝 멘트를 적은 김창완 작가. 그가 남긴 매일의 이야기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별볼 일 없는 일상에서도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며 솔직한 감정과 생각들을 털어놨는데요. 이 글들이 우리에게 따스한 위로가 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를 만든 웅진지식하우스 송보배 편집자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에디터 OH 안녕하세요.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OH 이번 인터뷰를 앞두고 김창완 작가님의 기사와 영상을 여럿 찾아봤어요. 한 인터뷰에서 '위로'라는 키워드로 이 책의 출간 제안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미 ‘아침창’ 오프닝 멘트를 엮은 책이 있었지만,  그 키워드를 듣고 수락하셨다고 하는데요, 편집자님께서 ‘위로’를 주제로 삼고 제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OH 저도 그 '동그라미'글을 본 기억이 있어요. 커뮤니티에서 '김창완 명언' '회사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이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되면서 ‘진짜 어른이다’ ‘어른의 지혜’라는 댓글들이 달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책을 기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한 것, 담고 싶었던 것,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속마음이 궁금합니다.

송 한 편 한 편이 짧다 보니 저자의 생각이나 태도가 담긴 글을 선별하려고 했고, 또 너무 밝은 이야기만 담지 않으려고 했어요. 얼마나 기적 같은 아침인지 경탄하는 태도는 새벽의 외로움과 번민이라는 맥락이 없이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고통과 상실감, 외로움 등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글도 선별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완벽한 동그라미라는 허상이 아니라, 한 존재로서 빛나는 자신을 믿고 긍정하는 태도를 전하고 싶었어요.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청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쏟아 넣는 게 우리가 살아온 경쟁 사회잖아요. 그런데 들여다보면 그 완벽한 동그라미조차 대부분은 남의 욕망이기 십상인 것 같아요. 완벽한 것을 추구하면 순간순간의 인생, 종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순간순간이 아름답고, 우리가 그리는 모든 동그라미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OH '동그라미'글을 포함해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들어보면 인생과 사람을 바라보는 저자 특유의 다정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분들이 이 책을 기다려왔고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한 명의 저자 이전에 어른으로 김창완을 만나 편집자가 던진 질문은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답을 받으셨나요?

송 어떤 답이라기보다는 선생님에게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어떻게 70대에도 저렇게 청춘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체력이나 동안이나 이런 게 아니라 어딘가 청춘 같은 느낌이 늘 있어요. 그 청춘다움이 뭘까 참 궁금했는데, 선생님을 보면 먼저 현재성이 있는 것 같아요. 책이 나오고 선생님 공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히트곡이 아니라 최근 작업한 곡들을 들려주시더라고요. 70대 가수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시는데, 실제 ‘시간’ ‘노인의 벤치’ 등 곡을 들으면 지금의 김창완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고, 듣는 사람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다르게 경험할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 음악가로서 자신의 현재를 계속 이야기해 나가려는 태도에서 젊음을 느꼈습니다. 

또 하나는 꼰대스럽지 않은 어른이라는 점인데요. 저도 나 자신의 꼰대스러움을 고민한 적이 있었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어른들 때문에 고민한 경험이 많았거든요.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하게 되고, 그럴수록 남의 미숙한 점이 눈에 잘 들어오고, 그러니 지적하고 싶어지고…. 그게 경험의 함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정말이지 모든 걸 믿고 맡겨주셔서 참 놀랐어요. 다른 의견이 있어도 고집하지 않고, 미숙한 점이 보여도 그냥 넘어가 주시더라고요. 

김창완 선생님을 보면서 청춘과 어른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느꼈고, 저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OH 미리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김창완 작가님이 23년 간 진행해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아침창)'가 종방을 맞았죠. '아침창' 종방 이후(또는 종방을 앞두고) 저자와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궁금합니다.

OH 저자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심도 많고, 연기, 노래,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님과 공통으로 좋아했던 영화나 책이 있을까요? 아니면 작가님의 활동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송 어떤 맥락이었는지 잊었습니다만, 김창완 선생님이 구본창 작가의 ‘비누’ 시리즈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다른 이를 깨끗하게 하면서 닳아 사라져 가는 게 비누잖아요. 저는 그 비누에 엄마로서의 제 삶도 투영돼 보였어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게 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이구나.’ 하는 감정도 느껴봤고, 아이에게서 다른 세상을 배워가면서 내 세계가 커지는 기쁨도 크게 느끼는 데요. 그것과 별개로 개인으로서의 나는 닳아 사라지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신생아 시기에는 쪽잠도 자기 힘들어 피폐했고,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우는 아기를 보면서 나에게 화장실 갈 자유조차 없다는 데 경악하기도 했고, 그런 물리적인 고통 외에 ‘한국사회에서 엄마의 과로는 생략된 페이지(수미,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어떤책, 2023)’라는 부조리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구본창 작가의 ‘비누’를 보면 아름답다 느끼면서도 서글프다는 생각도 듭니다. 

OH 책 속에서 어떤 분과 나눈 ‘날이 춥지요’라는 인사를 나누며, 함축적이지만 참 따뜻한 말이라고 느꼈다는 글이 개인적으로 참 기억에 남습니다. 별것 아닌 인사에서도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에서 오히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거든요. 책의 좋은 부분은 보도자료나 책 날개 등에 꼽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편집하면서 편자님에게 가장 마음을 와닿은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송 가장 와닿은 이야기는 ‘진짜 버려지는 시간은 누구 미워하는 시간입니다’였어요. 그게 저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살면서 미워한 사람은 지금 생각나는 사람만 적어봐도 A4 반 페이지는 금방 채울 것 같아요. 가족도 있고, 사회생활 하면서 만난 남들도 있고요. 사람은 자신 안에 없는 모습을 미워할 수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 제가 맹렬히 미워한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면 제 안에 있던 못난 모습 같아요. 그걸 알아도 미워하지 않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그게 소모적이고 소용없는 일이라는 건 너무나 명확한 것 같아요. 

OH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가 출간된 지도 벌써 3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 책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또는 아직 읽지 않은 분들에게 이럴 때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 추천의 말을 전해주세요.

송 오래 사랑받는 책을 만드는 게 모든 편집자의 바람일 텐데요. 3월 11일 예판을 시작하고 3개월 넘도록 정말 꾸준히 사랑받고 있어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이 책을 기획할 때 딸을 생각했어요.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인생은 쉽지 않은 걸 알게 될 텐데, 그럴 때 딸이 이 책을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생활은 자신의 모퉁이가 깨져나가는 일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얼마나 빛나고 기적 같은 존재인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가 당신에게 필요한 이유 3가지

새벽도 아닌 월요일 아침에 편집자님의 인터뷰 답변지를 보는데 왜 눈가가 촉촉해지는지...? 다 읽었을 땐 송보배 편집자님이 이 책을 만들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떠오르는 친구가 있어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제가 어설프게 전했던 위로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편집자님도 딸을 생각하며 책을 만드셨다고 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누군가에게 위로 대신 보내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편집자님의 인터뷰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이 더 완벽해집니다. 맛있는 반찬을 예쁘게 꼭꼭 담아,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도시락 같달까요?

지난 33호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을 앞두고 도서전을 더욱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팁을 공유했습니다. 그럼 지난 호를 읽고 구독자분들이 남겨준 리뷰를 함께 읽어볼게요.

『일만 번의 다이빙』, 40대 중후반인 나에게 고교생들의 고군분투기가 삶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밀려오네요.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죠?

─ 김영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