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꼽자면 짧은 분량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지만 그게 핵심이라고 한다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훨씬 많았겠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성공한 것은 ‘짧은데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 한 권을 읽었다는 경험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평론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키건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편소설보다 더 상황이 크고 드라마틱하고,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장편소설에서 기대할 법한 대중적인 이야기성이 있다고요. 마치 옛날이야기처럼요.

이 데이터를 강조하는 시대에 맞지 않겠지만 여전히 기획할 때 저를 화학적으로 건드리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먼저 우연히 발견한 영국 평론가의 서평이 강력하게 다가왔어요. “10여 년을 기다린 끝에 만난 키건의 신작이 114쪽(영국판 기준)에 불과한 데 실망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키건은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는 작가다.” 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이렇게 표현할까 싶었고, 알수록 왜 이런 작가가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을까 싶었죠. 그리고 작품을 더 알아보기 위해 일부를 발췌해 번역했는데,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자물쇠가 서리에 얼어붙은 장면을 보자 살아 있다는 게 피곤해졌다.” 재치가 넘치면서도 통찰이 느껴졌어요. 사는 게 피곤하다고 느끼는 건 사실 엄청 중대한 순간이 아니잖아요. 그때 이 작품이 저를 확 건드렸습니다.

저는 해외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편집자가 아니에요. 유수의 해외문학 편집자만큼 원서를 편하게 읽을 수도 없고 그들처럼 작품의 가치를 파악할 수도 없어요. 이런 사소한 지점들에서 마음이 동했고 기획까지 연결됐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번역서든 국내서든 저는 편집자가 글에 개입했다고 해도 그것을 밝히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도리를 떠나 그런 개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번역자가 홍한별 선생님인 만큼 선생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문장에 대한 키건의 태도를 깊이 이해하고 번역하셨고요. 키건의 태도란 ‘독자의 지성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애써 설명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것이죠.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한 독자에게서 ‘번역 개선 제안’이란 메일이 왔었어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첫 줄에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라고 번역된 부분을 “써머타임이 끝났다”는 식의 표현으로 바꿔야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죠. 우리도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독자가 있으리란 걸 알아요. 그러나 밝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알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키건의 방식이 아니에요. 저는 여기에 주석을 넣는 것조차 틀린 번역, 틀린 편집이라고 생각해요.

이 132쪽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 『맡겨진 소녀』가 미리 끌어올린 작가의 인기 등이 독자를 크게 끌어당겠지만 그걸로도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어요. 한국 독자에게 클레어 키건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신선한 해외 작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래, 이래서 해외문학을 읽었지’ 하는 그리운 감정을 안겨주기도 할 테고요.

몇 년동안 해외문학이 시장에서 존재감을 갖지 못한 현실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클레어 키건이란 작가가 국내에 유난히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그 명성이 꽁꽁 숨겨져 있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거든요. 신선한 해외문학의 발굴에 활발한 분위기였다면 대형 문학 출판사에서 얼른 채갔을 정도로는 알려져 있었다고 생각해요. 문학 출판사들이 그 시장에 이전보다 무관심했던 것이 다산북스에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잡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 오랜만에 만나는 신선한 해외 작가, 클레어 키건
• ‘독자의 지성을 신뢰하는’ 키건의 태도를 지킨 번역과 편집
• 짧은 분량에도 읽고 난 뒤 좋은 소설 한 권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선사하는 이야기

'클레어 키건은 하나의 장르다'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키건의 책을 설명하다 보면 '간결한 문장, 깊은 울림' 이런 키워드가 많은데요. 무척 공감합니다!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간결하고 정제된 문장 안에 깊은 의미를 담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짧은 시간 안에 집중해서 본다면 벽돌책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는 클레어 키건의 책이 처음이라면 『맡겨진 소녀』부터 읽기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번역가의 말까지 다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 editor AN

사실 제게 인상적이었던 건 클레어 키건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작품을 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귀중한 것을 발견한 듯한 후일담이 도대체 이 책이 뭐길래라는 생각을 들게 했거든요. 직접 읽지 않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물론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지만요. 그러나 분명 키건의 글이 입맛에 맞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입맛에 맞는다면 강한 중독성이 있기에 또다른 키건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될 겁니다.

 ─ editor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