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OH입니다. 구독자분들에게 어떤 책을 다뤘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 '고전'을 꼽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한때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들을 즐겨 읽기도 해서 반가웠어요. 우스갯소리로 고전을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은 없는 책'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워낙 명성이 높아 알려진 바가 있지만 그 참맛을 느껴본 사람은 비교적 적으니까요. 오늘 소개할 이 책의 작가도 이런 점에서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과 작품은 꽤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 사람이 유명한 이유, 한때 잘 나갔던 이유를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정말 술술 읽히거든요. 오늘 소개할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지막 에세이,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입니다.

허물어진 건물 잔해 앞에 어린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한 사내가 그 아이 앞을 지나가다 아이에게 묻습니다. 왜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느냐고. 아이는 잔해 아래에 가족들이 깔려 있고 자신은 쥐들이 가족들을 뜯어먹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사내는 곰곰 생각하다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단다.” 사내의 짧은 거짓말은 한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인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 중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의 줄거리입니다. 이 작품은 저에게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보르헤르트는 배우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징집됩니다. 그리고 여러 역경을 겪다가 병을 얻고 스물여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전쟁은 인류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으나 동시에 인류는 그 야만적인 시기에서 빛나는 인간의 존엄을 떠올립니다. 여기 온몸으로 전쟁을 경험하며 멋진 작품을 남긴 또 다른 작가가 있습니다. 비참한 현실에 견디지 못하고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가 남긴 글들에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희망이 가득합니다.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영감을 준 인물이자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원작인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어제의 세계』가 있고요. 그는 당시 전 세계에 6,000만 부 이상의 책을 판매한 아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이나 프로이트, 토마스 만 같은 세계 석학들이 특히 좋아한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요.

지금 이 시대에 활동했다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명성과 부를 쌓고 아주 오래 작가 활동을 했을 텐데요. 안타깝게도 그가 활동한 1900년대 초중반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양차 세계대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해야 했지요. 그는 1938년부터 나치의 박해를 피해 세계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종착지는 브라질로, 1942년 리우데자네이루 인근 페트로폴리스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돈이 곧 삶으로 잘못 이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돈의 미친 춤을 목격했던 츠바이크는 말합니다. “우리의 진전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책의 원제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실린 글과 같은 제목으로, 군더더기 없고 이 책에 실린 여러 에세이를 관통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세이가 아닌 자기계발서처럼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에세이들이 일관되게 드러내고 있는 주제, 즉 ‘일상’, ‘희망’, ‘용기’ 등을 엮을 수 있는 또 다른 제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 어두운 시절에」의 문장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고전은 세월을 견딘 이야기들로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재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의미가 무뎌지고 가치가 바래기 마련인데, 좋은 고전은 오히려 거듭 읽히면서 그 의미가 날카로워지고 가치가 새롭게 갱신됩니다. 츠바이크의 글도 그렇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지금,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계시다면 이 작지만 세월을 견뎌낸 책을 통해 어두운 시절을 이겨낼 강인한 마음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재수하던 시절 알게 된 밴드가 있어요. 재수학원을 다니면 아침 9시까지 등원해서 밤 10시에 나올 수 있는데요, 흔히들 말히는 새벽공기의 느낌처럼 10시의 번화가에도 특유의 느낌이 있답니다. 5,6층 되는 건물에서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재수생들, 10시까지 야근을 한 직장인들, 친구들과 술을 마신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이 밴드의 노래를 들었어요. 사실 재수를 했던 해는 저에게는 인생 최악의 해였어요. 압박감도 심했고, 제 자신에게 스스로 너무 가혹했던 것 같아요. 쭉 레터를 읽는데 딱 이 노래가 떠올랐어요. 좋은 추억인지 나쁜 추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인생의 한 페이지에 남아있는 추억인 건 확실하네요. 아 참, 노래는 Nothing But Thieves의 'Particles'입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스티커를 증정해 준다기에 속는 셈 치고(?) 구독 버튼을 눌렀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구독하는 뉴스레터들 중에 책에 대한 얘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 없더라고요. 그래서 매번 즐겁게 읽고 있는데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주제인 음악, 그리고 음악으로 떠올리는 지나온 시간에 대해 얘기해서 더더욱 한자 한자 꼼꼼하게 읽었어요. 이렇게 피드백을 남기는 것 또한 처음이고요ㅎㅎ 다음 레터도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