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AN입니다. 여러분, 숏폼 자주 보시죠? 중독이라 할 만큼 습관적으로 숏폼을 볼 때가 많은데요. 저는 재미로 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업무나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을 때 무념무상 숏폼을 찾는다는 걸 최근에야 자각했습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이 숏폼을 찾는 이유를 ‘정서적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에서 회피’하기 위함이라 분석했는데요. 숏폼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지나치게 콘텐츠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숏폼의 허무함과 피폐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재미난 콘텐츠로 눈을 돌렸습니다. 바로 고자극 연·애·소·설!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마음에 감동과 감정을 자극합니다. 거기다가 이 책이 고전이라면? 작가가 박경리라면? 숏폼 대신 책을 찾는 지성인 꿈꾸며, 오늘은 [박경리 컬렉션] 중 애정 서사가 담긴 연애 소설 3편을 소개합니다.

작가 박경리를 『토지』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20권에 달하는 장대한 분량, 70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 질곡의 역사 속에서 꿈틀거리며 숨 쉬는 거대한 생명력…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문학사의 거장 박경리 선생이 연애 소설을, 그것도 많이 썼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작가 데뷔 후 박경리 선생은 주로 단편소설을 써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휩쓸고 간 한국의 실상과 모순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생생하고 날카롭게 그려냈었죠. 그러나 선생은 곧 생활고에 부딪힙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선생은, 신문 연재소설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합니다. 치열한 ‘먹고사니즘’의 기로에서 나온 작품들이 우리가 아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시작점이었던 셈이죠.

그 당시의 ‘신문 연재소설’은 오늘날의 ‘웹소설’과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겁니다. 매일 일정한 분량이 실리고, 그 안에서도 기승전결이 무척 뚜렷하며, 각각의 에피소드로 엮인 거대한 이야기들 말이죠. 그래서인지 지금 읽어도 도파민 폭발을 보장하는 엄청난 스토리 콘텐츠입니다. 일단 1960년에 《대구일보》에 연재된 『은하』의 줄거리를 함께 보시죠.

실연의 아픔에 휘청거리던 최인희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재력가 이성태의 재취 자리로 들어갑니다. 결혼한 첫날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끼는 인희, 빼앗겨버린 삶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이놈의 끈질긴 남편이 도통 놔주질 않습니다. 집에서 가출하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등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지요. 그런데 재산을 몽땅 탕진해버린 줄 알았던 아버지가 실은 상당히 실속 있는 알부자임이 밝혀집니다. 그걸 노린 계모가 아버지를 구슬려 유일한 상속자인 인희를 이성태에게 보내버린 것이지요. 그것도 모자라 사위인 이성태를 유혹해 애인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서브 남주의 등장, 『푸른 운하』

보통 로맨스물에서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남주인공의 외모? 여주인공의 성품? 저는 매력적인 서브 남주인공의 유무를 꼽겠습니다.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은 지루한 소설도 끝까지 읽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죠. 주인공들의 사랑을 응원하다가도 괜히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는 그런 묘한 양가감정을 느끼게도 하고요.

 

역시나 박경리 선생이 쓴 장편소설에도 이런 맛도리 서사와 더불어 매력적인 서브 남주가 등장합니다. 바로 1960년에 《국제신문》에서 연재된 소설 『푸른 운하』에서 말이죠. (앞선 소개한 소설 『은하』와 연재 시기가 겹칩니다.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는…)

경상도에서 갓 상경한 아가씨 송은경은 어머니의 친구 허찬희의 집으로 향합니다. 어려울 때 찾아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허찬희는 국회의원 남편 김상국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딴살림을 차린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 이유로 늘 고독감을 느끼던 찬희는 은경을 기꺼이 맞아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남편 김상국의 비서로 일하는 이치윤이 갑작스런 맹장염으로 병원에 실려가고, 은경은 자연스레 치윤의 병실을 오고가며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실은 치윤이 돌싱이었거든요. 깔끔하게 관계가 정리되었으면 모를까, 부인은 그를 쉬이 놓아주지 않습니다. 둘 사이에는 딸까지 있고요. 은경과 치윤의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장벽이 생기고, 거기다 치윤의 친구이자 자유로운 영혼, 김남식이 은경에게 호감을 보이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바로 이 친구, '남식'이 은경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서브 남주이지요. 치윤이 은경에게 소홀하다 싶으면 대놓고 은경을 좋아하는 티를 내서 치윤의 애를 태우거나, 진전되지 않는 치윤과의 관계에 상심한 은경을 (한 치의 추근거림도 없이) 진심으로 위로해 주거든요. 읽는 내내 은경에게 화살을 쏜 큐피드를 원망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입니다. 심지어 이 흠 잡을 데 없는 서브 남주는 두 주인공의 사랑을 이어주고 쿨하게 퇴장합니다.

치윤과 은경은 미련한 사랑의 주인공들입니다. 치윤은 은경의 미래를 위해 편지 한 장을 써둔 채 잠적하고, 은경은 그런 치윤을 찾아나섭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꾼 남식은 은경에게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자신의 승기를 기꺼이 적에게 넘기는 남자, 한국 드라마에서 유구하게 이어져 온 ‘서브 남주’의 역사가 박경리 소설 한 켠에도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박경리 연애 소설의 시작, 『애가』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진수는 생계를 위해 미군 부대에서 일하다가 장교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떠나보내고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며 민호와 단란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진수 앞에, 그녀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대학 동기를 통해 진수의 과거를 듣게 된 민호는 배신감에 설희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죠. 그러나 사랑 없는 결혼이, 결합되지 않은 사랑이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민호는 다시 진수를 만나고 설희는 애정 없는 결혼에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맙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인스타그램에 인증샷과 태그(@1bite_letter)해 주시면 구경가겠쯥니다.🏃‍♀️🏃‍♀️💨💨

지난 30호에서는 『인생은 순간이다』의 편집자를 만나 봤습니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있기 위해 지금보다 더 새로워지고 더 나아지는 노력을 해온 감독님과의 작업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